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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성을 향한 부활의 드리프트
: The Strokes - <The New Abnormal>
- Released : 2020.04.10.
- Genres : Post-Punk Revival, New Wave
비정상성은 언제나 정상성으로 회귀한다. 불꽃같은 상승도, 끝없는 추락도 결국에는 반전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상화로 찾아온 그러한 평온마저도 마냥 해피엔딩인 것만은 아니다. 지루한 안정의 관성은 남모를 반발심을 키우고, 변화 없는 패러다임은 곧 매너리즘을 낳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단조로움 속에서 지난날을 반추하고 한편으로는 꺾여버린 광란의 황금기를 그리워하며, 새로운 비정상성의 탄생을 남몰래 고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중음악에서도 기존 체제의 붕괴와 개성의 상실, 패러다임의 교체는 꾸준히 반복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예시로는 90년대 초중반을 휩쓸었던 브릿팝(Brit-Pop)의 몰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브릿팝은 익히 알려진 Oasis와 Blur의 라이벌리와 같이, 음악 외적으로도 온갖 언론 플레이 등이 더해지며 한껏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장르였다. 그리고 그 버블은 공교롭게도 1997년 최대 수혜자 Oasis가 발표한 3집 <Be Here Now>에 대한 싸늘한 평가와 함께 순식간에 터져버린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 차세대 음악을 기치로 내걸었던 포스트 록(Post Rock) 마저도 매니악한 실험성에 매몰된 끝에 사실상의 실패로 결정되면서, The Beatles 이래로 수십 년간 이어져온 록의 독점은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그렇기에 이를 이어받은 2000년대 록의 주요 과제는 단연 대중적 혁신과 반전을 위한 '새로운 비정상성의 정의' 일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가시적인 성과를 보였던 것은 Green Day의 <Dookie>를 중심으로 재촉발된 팝 펑크(Pop-Punk)였다. 하지만 이를 참신한 음악적 구원이라고 논하기는 힘들었고, 그마저도 대중성을 넘어 상업성에 눈이 멀었다는 둥의 고지식한 비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편으로 Radiohead 역시 <OK Computer>, <Kid A>를 통해 유의미한 방법론을 제시했으나, 당시에는 그 가치를 몰이해한 아류들의 우울증 남발로 이어질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The Strokes는 지난 80년대 황금기의 유산을 직관적인 세련미로 해석해 내며, 단 한 장의 앨범만으로 지지부진하던 록에 결정적 변혁을 가져왔다. 실제로 그들의 데뷔앨범 <Is This It>에는 단순한 호평으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재기 넘치는 음악적 미학이 담겨 있었다. 앨범에 녹아든 눈부신 직관성은 녹슨 구시대 포스트 펑크(Post-Punk)의 광택을 다시 살려냈고, 장르에 내재되어 있던 허무함은 우아한 쾌락 뒤에 남겨진 씁쓸한 뒷맛으로 기막히게 치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Is This It>으로 제시한 대중성의 구원은 '부활(Revival)'이라는 키워드로 이견 없이 대변되며, 새로운 밀레니엄의 비정상성으로써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처럼 단숨에 포스트-펑크/개러지 록 리바이벌(Post-Punk/Garage Rock Revival)이라는 십계명을 제시한 The Strokes에게, 평론과 대중들의 구원자적 열광이 따라붙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실제로 The Strokes는 인디 록의 앞잡이(?) NME의 맹목적인 지지와 함께, 두 번째 앨범 <Room on Fire>로 소포모어 징크스마저도 보란 듯이 무너뜨리며 독보적인 스타성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그 장밋빛 미래와는 대조적으로 그들의 기세는 3집 <First Impression of Earth>를 기점으로 반전된다. 특히 '피로한 러닝타임'으로 요약된 날 선 심판들은 매너리즘의 이름으로 치솟는 이상치를 가위질해버린 것이 되었다. 결국 그렇게 제동이 걸려버린 The Strokes는 이어진 <Angles>, <Comedown Machine>을 통해서도 연착륙에 실패하며 긴 공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런 선지자의 추락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그들의 유산은 Arctic Monkeys, The Vaccines, Franz Ferdinand 등의 후발주자들로 이어지며 한낱 일장춘몽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The Strokes의 공백을 사실상 계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Arctic Monkeys가 2018년 <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로 스타일 변화에 돌입하면서, 나름 괜찮은 시도라는 평가와는 별개로, 장르는 완전히 구심점을 잃어버리게 된다. 실제로 그 이후의 포스트-펑크 리바이벌은 새로운 얼굴은커녕, Foals의 <Everything Not Saved Will Be Lost> 정도를 제외하면 그럴듯한 반향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배경 하에서 6년간의 공백기를 깨고 돌아온 The Strokes는, 정말 공교롭게도 그들의 첫날과 같이, 또 한 번의 기막힌 부활을 기어코 만들고 만다.
Maybe that's a kooky situation
So let's go back to the low key, old tempo, everything.
-The Adults Are Talking 가사 中-
The Strokes의 6번째 앨범 <The New Abnormal>은, 저성장 정체기를 의미하는 'New Normal'을 비튼 앨범명에서 느껴지듯이, 찬란했던 전성기로의 회귀를 재선언한 작품이다. 특히 앨범아트로 80년대 재즈에 대한 헌사를 담은 뉴욕의 예술가 Jean-Michel Basquiat의 작품 《Bird on Money》를 사용했는데, 이를 통해 '80년대 절정기'와 그들의 주무대 '뉴욕'을 향한 화려한 기억을 드리프트의 주요 단초로 삼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나아가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기타보다 레트로한 신디사이저를 전면적으로 활용하여 지난 80년대 뉴웨이브(New Wave)의 향을 되살리는데 더욱 중점을 두었다.
전성기의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적 토대와 함께, <The New Abnormal>은 경화된 시대정신의 변화를 촉구한다. 이를 위해 The Strokes는 오프닝 'The Adults Are Talking'에서부터 기득권들의 엇나간 권위를 직접적으로 겨냥한다. 특히 이 곡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Stockholders"로 대표되는 구세대 집단이 의미하는 바일 것이다. 지난날 The Strokes는 그 출신 배경 -부잣집 도련님- 덕분에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종종 본질에서 벗어난 불평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 무감각한 관성들은 "But then you want me to do it the same as you" 라는 가사처럼, '원래 하던 대로' 움직이길 강조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The Strokes는 그렇지 않았고, 그들의 비정상적 몸부림은 2000년대 록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기에 'The Adults Are Talking'의 이러한 은유는, 리스너에게 그 필사적 변화의 당위성을 보다 강하게 역설하는 장치로써 사용된다.
And the 80s song, yeah, how did it go?
When they said, "This is the beginning of the best years"
Even though, FALSE.
-Brooklyn Bridge to Chorus 가사 中-
이후 앨범은 끈적한 보컬이 리드하는 'Selfless'를 거쳐 -뉴욕의 심장인 맨하튼을 향하는 Brooklyn Bridge와 같이- 3번 트랙 'Brooklyn Bridge to Chorus'를 타고 앨범의 하이라이트에 진입한다. 이를 증명하듯 곡은 복고풍 신디사이저와 지극히 The Strokes다운 기타 톤을 완벽히 맞물리며 전성기로 드리프트 한다. 나아가 80년대의 포스트-펑크와 자신들이 다시 살려낸 00년대의 포스트-펑크 리바이벌을 위 가사와 같이 비유하며 전환과 도전의 결과를 한층 강조해 낸다. 앨범의 절정부를 담당하는 4번 트랙 'Bad Decision' 역시 'Brooklyn Bridge to Chorus'를 이어받아 패러다임의 탈피를 노래한다. 이러한 의지는 1970년대 데탕트의 한 축인 모스크바 정상회담을 연상시키는 "Moscow, 1972"라는 가사를 통해 강하게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후렴부의 장갑과 총에 대한 언급은, 아래 그림과 같이, 각각 The Strokes를 아직도 얽매는 초창기 걸작 <Is This It>과 <Room on Fire>에 대한 비유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곡은 계속해서 이를 잘못된 결정(Bad Decision)에 빗대며 이제 과거에 묶이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피력한다.
5번 트랙 'Eternal Summer'는 몰아쳤던 날 선 하이라이트를 정리하는 곡이다.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The Psychedelic Furs의 'The Ghost in You'에 대한 레퍼런스와 함께 차분한 요트록(Yacht-Rock) 사운드를 선보인다. 5분간의 숨 고르기 이후 이어지는 'At The Door'에서는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부수기 위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곡은 "I can't escape it. I'm never gonna make it til the end, I guess." 라는 가사와 같이 '수용'을 그 해답으로 내놓는다. 즉, The Strokes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견고한 유산 -초창기 앨범들-을 다시 뛰어넘지 못하더라도 그 틀에 끝없이 맞설 것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필사적인 변혁의 의지는 다음 곡 'Why Are Sundays So Depressing?', 'Not The Same Anymore'에서 과거의 실패를 낳았던 독단적 선택과 미숙한 관계들에 대한 자기반성으로 이어진다.
모든 의지의 피력과 반성을 거친 후, 앨범은 피날레 'Ode To The Mets'를 통해 비로소 새로운 비정상성을 맞이한다. 이를 위해 곡은 내부적으로는 음울한 신스 인트로와 아웃트로의 으르렁거리는 보컬, 풍부한 기타를 대비시키고, 외부적으로는 오프닝과 동일한 코드를 사용하여 구조적 수미상관을 완성한다. 이와 함께 The Strokes는 "I'm gonna say what's on my mind. Then I'll walk out, then I'll feel fine."이라는 가사를 통해 자신들을 가둬놓았던 틀을 완전히 탈피한다. 나아가 결말부에서는 지난날의 끝(Gone now are the old times)과 난간을 잡을 것(Forgotten, time to hold on the railing)을 언급하며 새로운 시대정신을 해방한다.
이렇듯 The Strokes는 <The New Abnormal>에 지난날의 실패에 대한 반성과 철저한 변화의 의지를 담아내었다. 특히 레트로한 신스와 달콤 씁쓸한 기타의 조합은 모든 리스너들의 의심을 바로잡으며 장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또한 그들을 얽매어 온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은, The Strokes와 유독 인연이 없던 그래미(Grammy) 최우수 록 앨범을 선사하며, 밴드의 영웅적 부활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The Strokes가 <The New Abnormal>에서 보여준 이런 역전의 카타르시스야 말로, 우리가 그 새로운 비정상성의 탄생에 열광하는 이유일 것이다.
So pardon the silence that you're hearing
It's turning into a deafening, painful, shameful roar
정상성은 언젠가 비정상성을 회복한다. 정답이라는 틀에 갇힌 빛바랜 안정의 관성도, 고루한 편견도 결국에는 무너지기 마련이다. 꺼지지 않은 변화의 의지는 반드시 새로운 구원을 낳을 것이기에.
The Strokes - <The New Abnormal>
<Track List>
1. The Adults Are Talking ★
2. Selfless
3. Brooklyn Bridge to Chorus ★
4. Bad Decisions ★
5. Eternal Summer
6. At The Door
7. Why Are Sundays So Depressing
8. Not The Same Anymore
9. Ode To The Me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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