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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아온 기억들의 총화
: 여자친구 - <Season of Memories>
- Released : 2025.01.13.
- Generes : K-Pop
사랑은 매개체가 필요하다. 절대 혼자서는 완성되지 못하며 무엇보다도 비로소 활활 타오르기 위해서는 그 두터운 장작을 불태울 발화점이 필요한 법이다. 혹여 누군가는 짝사랑을 이야기하겠지만, 그마저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연발화하지는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미묘한 찰나가 쌓여 하루의 감정을 만들고 그 감정은 그동안 쌓인 기억들을 불태울 명백한 불씨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약 5년 만에 컴백한 여자친구의 신보 역시, 지난 공백기 동안 쌓여온 애틋함을 불태울 매개체로써 자연스럽게 '기억'을 택한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그들의 데뷔작인 <Season of Glass>를 연상시키는 듯한 <Season of Memories> (이하 <SoM>)라는 신보 제목에서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나아가 구성적으로도 '밤', '해야' 등을 담당했던 작곡진을 택했고 MV와 여러 영상 등을 통해서도 켜켜이 쌓아온 발자취들을 끊임없이 조명한다. 물론 더 많은 곡들을 기대했던 것에 반해 적은 앨범의 볼륨은 다소 아쉬운 부분일 수 있겠지만, 타이틀 '우리의 다정한 계절 속에'와 수록곡 'Always' 두 곡 만으로도 <SoM>은 시간 속에 흩뿌려진 기억들을 효과적으로 끌어 모은다.
수많은 수식어들이 있겠지만 여자친구를 관통하는 정체성, 소위 '파워청순'과 '격정아련'은 컨셉 일변도의 K-Pop 씬 내에서도 상당히 두드러지는 색깔이다. 혹자들은 이를 두고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스럽다고 하지만, 사실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굵직하게 새겨놓은 댄스힙합의 충격파와 소위 1-2세대 아이돌을 거치며 자리 잡은 후크송으로 인해 K-Pop 씬이 현악, 기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법과는 멀어지며 발생한 감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기존의 대중들은 그 특유의 무미건조한 비트 남발에 어느 정도 피로감이 쌓여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 중 일부는 당연히 반사적으로 굵직한 멜로디 라인을 가진 곡들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때마침 등장한 여자친구는 각각 현악을 앞세운 '시간을 달려서'와 기타를 앞세운 '너 그리고 나'를 통해 정확히 그 틈을 파고들었다.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그들은 차트 최정상에 올라섰고, 대중들에게 벅차오르는 스트링 선율이라는 음악적 키워드를 선명히 각인할 수 있었다. 이후 여기에 '밤', '교차로' 등을 지나며 성숙한 서정성까지 더해지면서 여자친구는 고유한 정체성을 굳게 확립하게 된다.
시곗바늘이 밤을 가르며 멀리 왔지만
우리의 거린 그대로야
- 우리의 다정한 계절 속에 가사 中 -
그렇기에 <SoM>의 타이틀 '우리의 다정한 계절 속에' 역시, 자신들의 뚜렷한 색깔을 해치지 않으면서 트렌디함을 살리는데 집중한다. 먼저 이를 위해 곡은 여자친구의 색채를 담당했던 기존의 노주환, 이원종 체제를 유지하되, Shintaro Yasuda와 Takayuki "Kojiro" Sasaki 두 명의 일본 작곡진을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 결과로 '우리의 다정한 계절 속에'는 변함없는 일렉 기타 사운드가 탄탄한 기둥을 지탱하고, 그 위에 하이라이트를 타고 흐르는 매끄러운 키보드를 올리는 방식으로 2025년도에 걸맞은 신선도를 살려낸다. 물론 이는 한편으로는 대중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그 '일본 애니메이션'스러움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기도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어 전용 가사는 또 하나의 분명한 인장으로 동작하여 곡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상기시킨다. 그리고 가사에 녹아든 "시간", "밤" 등의 상징적인 아티스트 키워드 역시, 기억의 이정표가 되어 약 5년의 공백기가 무색할 정도로 지난 기억들을 훌륭하게 엮어낸다.
이후 <SoM>은 이어지는 'Always'를 통해 앞서 매개된 기억들을 재점화한다. 특히 두드러지는 베이스 라인과 신스가 상당히 매력적인데, 명쾌한 멜로디를 통해 앨범이 목표하는 애틋함과 감정들을 되살려낸다. 또한 곡은 절정부의 drop 구간을 활용해 그 직전 가사인 "Come with me now"를 기막히게 강조해 낸다. 나아가 "늘 변함없이 너의 곁에 있어 줄게", "너와 나 영원토록" 등과 같은 가사들은 재점화된 그 불씨를 자연스럽게 영원으로 이끌어간다.
이처럼 여자친구는 <SoM>에서 여전한 색깔과 서사로써 10년간 쌓아온 굵직한 발자취들을 종합해 냈다. 실제로 그 변치 않은 유기성은 휘발하기 쉬운 대중들의 기억들마저도 하나로 묶어내며, 차트뿐만 아니라 각종 영상들마저도 인기 급상승 동영상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뜨거운 감자로써 달아올랐다. 이러한 대중들의 열렬한 반응은 어쩌면 시간이 지났어도 그 기억 속에 여자친구라는 아티스트에 대한 분명한 갈증이 남아있었음에 대한 방증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하여, 일전에 그리움은 사랑이 남긴 그림자와 같다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즉, 지금 가슴에 새겨진 진한 그리움은 치열했지만 이제는 재가 되어버린 지나간 불꽃이 남긴 흔적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반대로 아직 꺼지지 않은 애틋함은 그리움이 아니라 약간의 땔감만 있다면 그 자체로 얼마든지 다시 뜨겁게 타오를 수 있다. 그렇기에 <SoM>도 마찬가지로 그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리스너들의 기억 속에 이리저리 흩뿌려진 기억들과 지금을 그저 연결해 준 것 뿐이다.
떨리는 heart 빛나는 eyes
기다렸던 찬란한 scene
다시 한 번 널 떠올려
시린 계절을 넘어 비로소 이어진 순간의 기억들은, 그 연료로써 자연스레 타오를 것이기에.
여자친구 - <Season of Memories>
<Track List>
1. 우리의 다정한 계절 속에 ★
2. Alway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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