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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살아가야 할 모든 청춘들의 날씨

: 쏜애플 - <이상기후>

- Released : 2014.06.12.
- Genres : Indie Rock, Alternative Rock


 맑고 청명한 봄가을 날씨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물론 지구 온난화 덕분에(?) 이제는 그런 계절에 맞는 적당한 날씨를 찾는 것도 어려워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나름대로 그 이상한 날씨도 이겨낼 방법은 있기 마련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의 목표는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일 테니 말이다.

 

 사계절 중에서도 봄이 가지고 있는 계절감은 확고하다. 넘쳐흐르는 푸른 생명력과 맑은 하늘의 순수함은 봄이 대표하는 그 모든 아름다움의 근원이다. 그렇기에 '청춘'을 단순히 'Youth'로 대치하기에 아쉬운 이유도, 이러한 봄을 그 단어 속에 명확하게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로부터 비롯된 '푸르고 낭만적인 봄'이라는 고정된 청춘의 이미지는, 그 계절 속에서 '맑음' 이외의 다른 날씨들을 교묘하게 배제시켜 버렸다. 새파랗게 맑다 못해 비 한 방울 없이 매일매일 뜨거워지는 이상기후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에 따라 모든 젊음의 날씨는 청춘이라는 이름하에, 당연한 아픔이자 한때의 낭만으로 치부당하며, 왜곡된 하나의 이미지로 통일되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고착화된 절대적인 봄은 한자 문화권에서 청춘을 다루기 까다롭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2000년대 초중반 일본에서 Going Steady - 銀杏Boyz를 중심으로 태동한 청춘 펑크가 아직까지도 그들을 뛰어넘는 아티스트를 배출해내지 못한 것이고, 국내는 초록불꽃소년단 정도를 제외하고는 청춘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아티스트들이 사실상 사멸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쏜애플은 그들의 2집 <이상기후>에서 상당히 영리한 방식으로 각인된 봄의 이미지에 접근한다. 바로, 그 까다로운 계절의 채도를 바꿔버리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쏜애플은 지금껏 낭만으로 포장해왔던 맑은 날씨들의 실체인, '이상기후'를 자연스럽게 앨범에 연결해 낸다. 

 

쏜애플 - '남극'

 먼저, 앨범의 오프닝인 '남극'은 얇은 기타라인과 가느다란 보컬을 통해 아슬아슬한 청춘의 모습을 그려낸 곡이다. 특히 여기서 설정된 '남극'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청춘들이 살아가는 삶의 공간을 의미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생명의 상징인 봄-청춘과 정반대로 대비되며, 역설적으로 그 계절이 청춘들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그렇기에 쏜애플은 이 아이러니한 세계 아래에서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아" 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고백을 시작으로 앨범을 찬찬히 전개해 나간다. 이처럼 '생존'은 <이상기후>에서 가장 직관적이고 핵심적으로 다뤄지는 키워드이다. 애초에 앨범 소개에서부터 대놓고 알려주고 있을뿐더러, 이를 모르더라도 리스너들이 곧바로 눈치챌 수 있을 만큼 모든 트랙들이 '살아남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더불어 윤성현 특유의 그로테스크하고 적나라한 작사는 이와 정확히 맞물리면서 그 치열하지만 고결한 열망을 곱씹어보게 만든다. 대표적으로 '남극'의 "뜨거운 물을 살이 다 부르틀 때까지" 나 '백치의 "피를 좀 더 흘려줘요", '물가의 라이온'의 "쓰라려도 내 몸이 다 녹아도" 와 같은 가사들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사들은 저열한 표현들이 직접적으로 들어가 있지는 않은데도 묘한 불쾌감과 함께 현실적인 처절함을 전달하며, 아슬아슬한 청춘의 살아남기를 표현해 낸다.

 

쏜애플 - '시퍼런 봄'
식어버린 말을 지껄일 바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어쨌거나 달아나진 말아요
오늘 하루를 살아남아요

-시퍼런 봄 가사 中-

 

 이어지는 2번 트랙 '시퍼런 봄'은 청춘(靑春)이라는 단어에 대한 비장한 치환이자 젊음의 이상기후에 대한 성난 원성이다. 이를 위해 곡은 앞선 '남극'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강렬하고 인상적인 기타 전주로 시작하며 리스너를 순식간에 집중시킨다. 나아가 시원하게 질주하는 그 기타 위에 카랑카랑한 윤성현의 보컬을 더하며 본격적으로 청춘의 서슬 퍼런 현실을 폭로한다. 앞선 트랙에서도 드러나듯이, '맑고 푸름'이라는 고정된 청춘의 이상기후는, 삶의 공간인 남극을 녹여버렸고 심지어 어떤 기도와 기적조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비 한 방울 없이 맑기 만한 그 나쁜 날씨 속에서 꿈꿀 수 있는 가장 단순하지만 분명한 목표는, 위 가사처럼 "어떻게든 오늘 하루를 살아남기" 말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젊음의 이 절박한 생존 의지는 열정과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혹자들에 의해 너무나도 쉽게 당연시된다. 그렇기에 이러한 외부의 "식어버린 말" 들은 '시퍼런 봄' 뿐만 아니라 <이상기후> 전체에서 걸쳐 끊임없이 비판받는 대상이 된다.

 

어차피 이 지구에선 모두 외톨이
나를 구해줘요 따윈 모두 헛소리
서로서로 잡아먹는 짐승의 놀이
알면서도 계속하는 나는 멍청이

-백치 가사 中-

 

 앞선 '시퍼런 봄'의 에너지를 온전히 이어받아 3번 트랙 '피난' 역시 속도감 있는 기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와 함께 곡은 서로 속고 속이고 도망치는 모습들을 날 것 그대로 그려냄으로써, 각인된 젊음의 이미지를 철저히 파괴시킨다. 이를 통해 본능적이고 치열한 젊음의 열망이 거짓된 청춘의 낭만을 자연스럽게 밀어내고, 4번 트랙 '백치'가 이를 이어받아 위 가사처럼 그 생존 본능을 한층 더 직설적으로 그려낸다. '백치'의 이러한 고백은, 각인된 젊음의 낭만보다 오히려 위처럼 차가운 판단과 때론 잔인한 선택으로 그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더 진실하지 않은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상기후>는 독립적으로 각자의 주제를 전달하는 대신, 컨셉 앨범과 같이 '생존'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각 곡들을 서로 유기적으로 묶어내는 전략을 취한다.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리스너들은 각각의 트랙들에서 그려지는 청춘의 몸부림들에 더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쏜애플 - '낯선 열대'
오늘은 어제와 비슷한 수의 사람들이
길에서 죽어간 하루
오늘은 누구의 목숨도 내겐 의미 없는
힘겨운 열대의 하루

-낯선 열대 가사 中-

 

 이어지는 5번 트랙 '살아있는 너의 밤'은 음산한 인트로가 인상적인 곡이다. 앨범의 중반부에 위치한 이 곡은, 앞선 '백치'에서 보여준 약육강식의 투쟁에서 한 층 더 나아가 죽음의 두려움으로 관점을 전환한다. 특히 곡의 후반부에서 불안하게 반복되는 가사들과 몰아치는 기타는 떨어진 속도감을 다시 끌어올리며, 다음 트랙인 '낯선 열대'로 생존의 압박감을 전달한다. 그렇게 전달된 압박감은 위 가사와 같은 절박한 체념으로 이어지며 앨범의 하이라이트를 완성하게 된다. 특히 이 곡에서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점은, 남극에서 열대로 완전히 바뀐 젊음의 세계일 것이다. 이러한 배경 설정은 심화되는 청춘의 온난화를 자연스럽게 조명하며, 광기의 웃음 소리를 기점으로 전환되는 곡의 하이라이트와 함께 그 필연적인 적자생존의 사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열정적인 하이라이트 뒤에 이어지는 두 개의 트랙, '암실'과 '베란다'는 <이상기후>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실험적인 트랙들이다. 우선 7번 트랙 '암실'은 날카롭고 직선적인 멜로디들이 앞장섰던 이전 곡들과는 달리, 묵직한 베이스와 어두운 키보드를 중심으로 앨범의 분위기를 전환한다. 나아가 8번 트랙 '베란다'에서는 덥(Dub)의 형식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두 트랙 모두 다른 곡들과는 달리 음향적 변화가 두드러지다 보니 앨범 전체를 환기해 주는 역할에 좀 더 치중되어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두 트랙들이 앨범의 주제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암실'에서 쏜애플은 어두운 멜로디와 함께 청춘의 두려움을 연결해 냈고, '베란다'에서는 '시퍼런 봄'의 "식어버린 말" 과 동일한, 혹자들의 "미지근한 철학" 을 다시 한번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곡과 함께 앨범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아지랑이'는 '남극'에서 시작된 생존의 이유에 대한 답변서이다. 지금껏 그 대단한 식어버린 말들이나 미지근한 철학, 일기예보들은 시끄럽게 떠들기만 할 뿐, 그 이상기후에서 살아남는 법을 한 번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쏜애플은 '아지랑이'에서 담담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그 나쁜 날씨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웅변한다. 그렇게 곡은 '살아있음' 그 자체의 고결함으로 청춘의 본질을 정의 내리며, 가혹한 이상기후 속 유일한 청춘의 열망을 리스너에게 전달한다. 

 

해를 가리는 내 두 눈을 가리는
신님의 목덜미를 물었다

-물가의 라이온 가사 中-

 

 앨범의 피날레인 '물가의 라이온'은 '아지랑이'에서의 깨달음에 대한 마지막 시험대이다. 여기서 쏜애플은 니체가 언급한 정신의 3단계인 '낙타-사자-아이'를 모티브로 활용한다. 먼저 니체는 《차라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기존 체제에 복종하는 삶을 '낙타'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이는 앨범에서 화자가 줄곧 언급하고 비판했던 외부의 "식어버린 말" 들을 따른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심지어 이는 '물가의 라이온'에서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어리석구나", "어린 너는 빠져 죽으리" 와 같은 가사들로 끝까지 이어지며 마지막 시험대에 위치한 청춘을 계속해서 유혹한다. 하지만 지금껏 앨범의 각 트랙들에서 묘사된 생존을 위한 모든 청춘의 투쟁은, 이상기후라는 치열한 세계에 저항하는 '사자'의 정신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청춘은 최후의 시험대인 이 곡에서, 위 가사처럼 생존의 의지를 흔드는 신의 목을 물어뜯으며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아이'의 정신으로 나아간다. 이와 함께 쏜애플은 날카로운 밴드 사운드를 폭발시키며 앨범의 피날레를 완성하게 된다. 

 

쏜애플 - '아지랑이'

 이처럼 쏜애플은 <이상기후>에서 낭만으로 포장된 새파란 봄의 장막을 들추고 채도를 낮춘 차가운 비유와 날카로운 연주들을 통해 잔인한 젊음의 날씨를 묘사했다. 또한 그 서슬 퍼런 계절 속을 살아가는 모든 몸부림들은 '생존'이라는 키워드로써 앨범 전체를 꿰뚫어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청춘에 대한 색다른 접근 덕분에, <이상기후>는 2015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부분 수상 후보로까지 노미네이트 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앨범이 남긴 일시의 울림만으로 이 땅 위에서 시퍼런 봄날의 일기예보가 한순간에 바뀐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상(異常)기후가 여전히 청춘의 이상(理想)이라는 이름으로 오늘을 옥죄더라도, 분명 살아나갈 방법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몸에 흐르는
새빨간 피의 온도로만 말하고 싶어
차가운 혀로 날 비웃지는 말아줘

 

너무나 당연하기에 자세히 살펴보지 않은 '삶' 그 자체의 뜨거운 열망이, 그 지독한 계절을 빠져나가는 유일한 생존 수칙이 되어줄 테니 말이다.

 

쏜애플 - <이상기후>


<Track List>

1. 남극 ★
2. 시퍼런 봄 ★
3. 피난
4. 백치
5. 살아있는 너의 밤
6. 낯선 열대 ★
7. 암실
8. 베란다
9. 아지랑이 ★
10. 물가의 라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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