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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사랑의 스펙트럼
: Dispirited Spirits - <The Redshift Blues>
- Released : 2023.03.10.
- Genres : Space Rock Revival, Midwest Emo, Math Rock
우주는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무한한 경외의 공간이었다. 태양은 영원한 절대자였고, 달은 완전함 뒤에 광기를 품은 양면적인 존재였으며, 별은 공허 속에서 도도하게 빛을 발산하는 찬란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수많은 신화와 종교, 시와 음악, 수식과 법칙들로, 그 초월적인 공간을 향해 모든 형태의 세레나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 수많은 구애에도 불구하고 매정한 우주는 좀처럼 곁을 내어주지 않고 계속해서 멀어져만 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차가운 뒷모습에서 적색편이(Redshift)라는 이름의 새빨간 스펙트럼만을 관측할 뿐이었다.
적색편이는 관측자로부터 멀어지는 천체가 내는 빛의 파장이 늘어나 스펙트럼의 패턴이 적색으로 치우쳐 관측되는 현상이다. 이 현상에서 이름을 따온 Dispirited Spirits의 두 번째 앨범 <The Redshift Blues>는, 그 스펙트럼을 따라 아득히 떠나간 사랑의 아픔을 노래한다. 이 앨범처럼 우주를 테마로 하는 앨범들은 지금껏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적어도 록의 하위 스타일로써 본격적으로 구체화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1957년 소련에서 발사한 스푸트니크 1호의 성공으로부터 촉발된 우주 경쟁의 영향이 지대했다. 우주 경쟁이 남긴 과학적 낭만의 홍수는 초현실적인 영감을 자극했고, 이는 정말로 마약하고 음악을 만들던 당시 프로그레시브, 사이키델릭 록에 녹아들기에 충분했다. 그 결과 스페이스 록은 자연스럽게 프로그레시브, 사이키델릭 록의 파생으로써 이펙트 먹인 몽롱한 텍스처를 기반으로 하는 특유의 형식으로 정립되어 나갔다. 그렇게 스페이스 록은 70년대의 Pink Floyd와 Hawkwind, 80년대의 Spacemen3, 90년대에는 Spacemen3에서 갈라진 Spiritualized 등으로 이어지며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이후 스페이스 록은 메인 소스였던 우주 경쟁이 냉전의 종식과 함께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자연스럽게 전환점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근본적인 우주적 영감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기에, 장르는 약간의 사운드 변주만으로도 충분히 이어져 나갈 수 있었다. 특히 만악의 근원(?) My Bloody Valentine이 인디 록 전반에 풀어버린 슈게이즈는 조밀한 스페이스 록 사운드에 덧붙이기 쉬운 가장 무책임하면서도 보편적인 해결책이었다. 그리고 이는 Spiritualized를 통해 미니멀하고 최면적인 사운드로 선도되며 하나의 굵직한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된다. 한편으로 Denison Marrs 같은 밴드는, 매스 록(Math Rock)의 복잡한 리듬 구조와 실험성을 활용해 우주의 신비함을 앨범에 담아내기도 했다. 이러한 사운드 분화는 얼마 되지도 않은 스페이스 록 역사 속에서 'Revival'이라는 키워드까지 붙게 만들며 장르의 궤도를 확장시켰다. 그에 따라 Failure, Windy & Carl 등 기존 장르의 연장선에 있는 밴드들은 물론, 대중적으로는 Muse 등이 그 넓어진 궤도를 따라 공전하며 천문학적 모티브가 담긴 음악들을 유성우처럼 쏟아내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장르의 흐름은 2020년대에 들어서도 꾸준히 이어졌다.
포르투갈 출신의 1인 밴드인 Dispirited Spirits는 이러한 스페이스 록 흐름을 이어나가는 아티스트 중 하나이다. 그는 지금까지 본 리뷰에서 다룰 <The Redshift Blues>를 포함하여 총 2개의 앨범을 발매했는데, 두 앨범 모두 우주로부터 영감을 얻은 키워드들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본격적으로 Dispirited Spirits의 두 번째 앨범 <The Redshift Blues>를 다루기에 앞서, 2021년도에 발매된 그의 데뷔 앨범 <Fragments of a Dying Star>를 잠깐 살펴보자.
<The Redshift Blues>가 적색편이라는 물리적 현상에 대한 비유라면, 전작 <Fragments of a Dying Star>는 별의 죽음이라는 천문학적 필연성을 주제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는 앨범에서 Car Seat Headrest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인디 록, 네오-사이키델리아적 구성과 연결되며 존재와 우주의 목적의식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을 리스너에게 던졌다. 그리고 Dispirited Spirits는 이 데뷔 앨범에서 전형적인 어두컴컴한 우주적 묘사와는 달리, 직관적인 사이키델릭함과 뿅뿅거리는 신스를 조합해 반짝이는 우주의 낭만을 표현해 내며 인상적인 음악적 역량을 드러냈다. 더군다나 그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2021년에 그는 고작 17살이었다!), 다음 앨범에서도 앞서 호평을 받았던 데뷔 앨범의 기조를 이어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Dispirited Spirits는 놀랍게도 이러한 기존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을 거부하고, 데뷔 앨범과는 완전히 다른 사운드 구성을 선보이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발매된 본작 <The Redshift Blues>는 매스 록에서 확장된 미드웨스트 이모(Midwest Emo)를 활용해 초현실적인 질감과 하드코어의 폭발력을 결합한 스페이스 록을 선보인다.
In parted latitudes the starlight's hindered by
A moratorium for what we left behind
I'll be my enemy and you'll part out of sight
This forlorn universe sings redshift blues tonight
- Ships Sailing Space 가사 中 -
앨범의 오프닝인 'Ships Sailing Space'의 첫 문단인 위 가사는 <The Redshift Blues>에 대한 완벽한 요약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이 가사는 앨범의 첫 곡 'Ships Sailing Space'와 마지막 곡 'Redshift Blues' 두 곡에서 의도적으로 반복되어 사용된다. 이를 통해 앨범은 공간적 배경을 우주라는 초월적인 무대로 확장하고, 적색편이라는 과학적 현상과 떠나간 사랑의 아픔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낸다. 그와 함께 곡은 실연의 잔해가 남은 그 심연으로 우주선의 방향을 돌리며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한다. 이처럼 Dispirited Spirits는 앨범의 각 트랙들에서 구질구질한 한탄을 가사로 늘어놓는데 집중하기보다는, 상실을 직접적으로 마주함으로써 몰려오는 감정들을 전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은 <The Redshift Blues>가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미드웨스트 이모를 선택한 것에 대한 확실한 당위성을 부여해 준다. 그 장르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모(Emo)만큼 감정적인 메시지(특히 우울, 슬픔, 분노)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인 장르도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곡은 우아한 기타 아르페지오와 강렬한 하드코어 피날레를 결합하며 리스너가 그 감정에 빠르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Can a nebula's worth еxceed the preceding star?
- Nine Clouds 가사 中 -
다음으로 'Nine Clouds'는 별빛처럼 반짝이는 신스 전주로 시작하며 앨범의 템포를 조절한다. 이 곡에서 이야기하는 구름(Cloud)은 성운(Nebula)에 대한 직접적인 치환이다. 천문학적으로 성운은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이 곡에서는 초신성 폭발로 남은 잔해로 만들어진 성운에 좀 더 가까울 것이다. 한때는 스스로 빛을 냈던 별의 잔해일지라도 결코 스스로 발광하지 못하는 성운처럼, 사랑의 잔해도 그 본래의 가치를 잃어버린 미련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위 가사로 곡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되며 상실감과 후회를 전달한다. 이어지는 3번 트랙 'Former Living Thing'은 채 3분도 되지 않는 길이를 가진 곡이지만, 앨범에서 가장 굵직한 트랙 중 하나이다. 서정적이고 재지한 인트로를 가진 이 곡은, 묘한 불안감을 품은 채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다가 강조된 보컬의 침범과 함께 부서지며 이중적인 매력을 선보인다.
4번 트랙 'Bring Down the Sky'는 앞선 트랙에서 미처 터지지 못한 잠재 에너지를 이어받아 모든 악기들을 한번에 폭발시키며 인상적인 하이라이트를 완성한다. 특히 이 곡은 연속적인 리듬 배열을 기승전결을 따르지 않고 여기저기 섞으면서 그 전개를 쉽게 예측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러한 구조는 다소 집중력이 떨어지는 앨범 중반부에서 신선함을 불어넣음으로써 앨범의 중력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 곡은 가사에서 '빨간색'에 대한 색감을 가장 많이 드러내는 곡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I'll wave your magnitude away / While wavelengths magnify"라는 가사는 앨범명인 적색편이 -파장이 길어지면 빛은 적색으로 편이된다-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이다. 또한 이 뒤의 "Proxima"는 적색거성의 이름이고, "scarlet blues-singing stars"에서는 대놓고 진홍빛이라는 가사를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Bring Down the Sky'는 이러한 색감 있는 가사와 층층이 쌓인 악기들의 폭발력을 앞세워 처절하게 무너져가는 감정을 훌륭하게 표현해 낸다.
'Bring Down the Sky'가 앨범의 색감을 드러냈다면 5번 트랙 'Saturnine Saturn Dreams'에서는 토성(Saturn) 탐사에 대한 키워드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특히 Voyager, Pioneer, Cassini 같은 실제 탐사선들의 이름은, 상실의 공허를 마주하는 여행자의 외로움을 상징한다. 이와 함께 곡은 팽창하는 악기들을 찬찬히 쌓아가며 마지막으로 남은 헛된 미련을 노래한다. 6번 트랙 'Methanol Fire'는 여정의 끝으로 다가가기 위한 전환점이다. 그에 따라 곡은 지금껏 이어진 무거운 선율에서 탈피해 밝고 산뜻한 멜로디를 빌려 마치 메탄올 불꽃처럼 남은 사랑의 잔해를 깨끗하게 태워버린다.
The sky fell down
And nothing felt quite like before
- Redshift Blues 가사 中 -
앨범의 피날레인 'Redshift Blues'는 첫 곡 'Ships Sailing Space'의 도입부에서 이어지며 부서진 우주를 마주했던 시점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앞선 여정들을 통해 씁쓸한 사과와 체념으로 남은 재를 태워버렸기에, 돌아온 그 자리에서 다시 바라본 무너진 하늘은 이전과는 분명히 다르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게 곡은 10분간의 리듬 롤러코스터를 거쳐 웅장한 대폭발과 함께 새빨간 스펙트럼을 남기며 서서히 멀어지며 마무리된다.
이처럼 <The Redshift Blues>는 실연의 아픔을 초현실적인 스페이스 록 사운드와 우주과학적 비유로써 녹여낸 앨범이다. 앨범은 전작과는 180도 달라진 사운드 구성을 통해 리스너들에게 색다른 신선함을 제공했다. 특히 매스 록의 차갑고 분리된 화음은 마치 스펙트럼처럼 갈라지며 떠나간 사랑의 빛깔을 묘사해 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진 이모(Emo)의 폭발력은, 후회와 그리움으로 치환되며 리스너들이 그 외로운 우주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Dispirited Spirits가 <The Redshift Blues>에서 보여준 의도적인 사운드 변화는, 어쩌면 그 차가운 뒷모습을 마주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But how can a man sail this galaxy without staring at the abyss?
심연을 마주하지 않고는 은하를 여행할 수 없듯이, 상처를 멀리할수록 그 떠나간 사랑이 남긴 스펙트럼은 더 새빨갛게 편이 될 뿐일 테니 말이다.
Dispirited Spirits - <The Redshift Blues>
<Track List>
1. Ships Sailing Space ★
2. Nine Clouds
3. Former Living Thing ★
4. Bring Down the Sky ★
5. Saturnine Saturn Dreams
6. Methanol Fire
7. Redshift Blu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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