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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직 신인이 그리는 4월의 봄날

: AprilBlue - <Blue Peter>

- Released : 2019. 12. 04.
- Genres : Shoegaze, Dream Pop


 어떤 분야든 아무것도 없이 밑바닥부터 새로운 것을 키우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초보여도 어느 정도의 실력은 가지고 있기를 원했고, 그런 기대치는 '경력 있는 신인'이라는 다소 모순적인 키워드로 정착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런 경력직 신인이라는 키워드는, 실력도 인기도 없으면 철저히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음악 시장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확보하면서 대중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출구로써 사용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러한 특징은 그 당사자인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그들의 음악을 소비하는 리스너에게도 아티스트의 성향이나 실력에 대해 최소한의 추론을 가능하게 한 덕분에, 원하는 스타일의 실력자를 찾기 어려운 인디씬을 중심으로 음악계 전반으로 빠르게 퍼져나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리뷰에서는, 일본의 경력직 신인밴드이자 앞선 For Tracy Hyde, Supercar 리뷰에서 이어지는 일본 슈게이즈 3부작 시리즈의 마무리로, AprilBlue (エイプリルブル)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우선 AprilBlue는 현재 일본 슈게이즈 / 드림팝 씬의 대표주자 For Tracy Hyde를 이끄는 夏bot (Natsubot)을 중심으로 2019년 결성된 밴드이다. 夏bot 외의 다른 밴드 멤버들로는, I Saw You Yesterday의 Murakami Kai (기타), ARAM의 Muraoka Yuki (베이스), 17 Years Old and Berlin Wall (17歳とベルリンの壁)의 Miyazawa Junichirou (드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원래 소속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두 지금의 일본 슈게이즈 / 드림팝씬을 선도하는 주요 밴드 출신이었기에 '경력직 신인'이라는 타이틀이 그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밴드일 것이다.

 

Blue Peter - 항구의 선원들에게 선박의 출항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깃발

 그렇게 하나로 모인 경력직 신인들이 2019년 12월에 발매한 데뷔앨범 <Blue Peter>는 날짜 상으로는 겨울에 발매되었지만, 청량하고 부드러운 봄의 감성을 노래하고 있다. 먼저 앨범 제목 <Blue Peter>는 선박의 출항을 알리는 동명의 깃발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AprilBlue라는 밴드의 첫 시작을 의미하는 제목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따라 앨범커버도 실제 깃발 모양에서 따와서 구성한 것이 눈에 띄는데, 파란색과 하얀색의 조합을 통해서 이 앨범에서 AprilBlue가 보여줄 청량한 음악의 색깔을 미리 유추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AprilBlue에게서 드러나는 가장 주목할 만한 음악적인 특징은, 슈게이즈라는 장르적 공통점 말고는 실질적인 음악의 색깔이 전혀 다른 4개의 밴드가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짙게 드러나는 夏bot 특유의 캐치하고 말랑말랑한 드림팝 사운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운드의 배경에는, 그가 AprilBlue의 모든 작곡을 맡고 있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For Tracy Hyde때부터 夏bot이 목표로 하고 있는 음악적인 정체성이 굉장히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夏bot은 Ride, The Stone Roses, Supercar, Filpper's Guitar 등 80-90년대 매드체스터와 슈게이즈에 강한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켜왔다. 그렇기에 그는 슈게이즈의 문법을 채택하면서도, '청량함'과 '캐치함'이라는 키워드를 자신의 음악에서 단 한 번도 떨어트려 놓은 적이 없다. 그 덕분에 夏bot만의 독특한 사운드는 오히려 슈게이즈이라는 마이너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리스너에게 큰 거부감 없이 다가올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스타일은 -For Tracy Hyde를 통해서 결과적으로 성공하면서- 유독 컬트적인 마니아들이 많은 일본 슈게이즈 / 드림팝 씬에서도, 가장 독창적인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다. 다만 이런 夏bot 특유의 사운드를 자기복제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어쩔 수 없이 존재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비판점도 어쩔 수 없는 것이, 그 음악적 지향점이 워낙 확고한 탓에 AprilBlue 뿐만 아니라 夏bot의 광기(?)가 만들어낸 슈게이즈 아이돌 ········· (Dots Tokyo)와 RAY에서도 역시 그의 독특한 음악적인 지문이 드러나니 말이다. 그렇기에 어떤 하나의 앨범에서 드러나는 직관적인 사운드나 장르의 문법만을 놓고 감상했을 때는, 夏bot 특유의 색깔 자체가 너무 강렬하기에 당연히 자기복제적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夏bot이 작업한 이 디스코그래피들을 전체적으로 놓고 비교하면, 아티스트들 마다 그 사운드의 차이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이를 한번 정리해 보면, 夏bot의 음악적 방향성이 가장 날 것 그대로 반영된 것이 그의 메인 밴드였던 For Tracy Hyde의 음악이고, 이를 아이돌적인 면으로 확장시킨 것이 ·········(Dots Tokyo)와 RAY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夏bot의 이런 여러 프로젝트 중에서도, 일본 슈게이즈에 대한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J-Pop 스러운 해석이 바로, 이번 리뷰에서 다룰 AprilBlue의 음악이다.

 

AprilBlue - 'エイプリルブルー (AprilBlue)'

 전체적으로 <Blue Peter>는 夏bot 사운드의 가장 J-Pop적인 해석답게, 귀에 거슬릴 수 있는 노이즈는 상당히 걷어내고, 앨범커버와 같은 청량하고 부드러운 사운드를 중심으로 주류 J-Pop 감성을 따라가면서 곡을 구성했다. 이러한 <Blue Peter>를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앨범의 첫 시작에 'Intro'를 포함하고 있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Intro'를 포함한 앨범 구성은 夏bot이 For Tracy Hyde의 앨범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For Tracy Hyde의 경우 그들의 앨범에서 리스너가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어떤 비디오를 본다는 느낌을 리스너들에게 유도하기 때문에, 오프닝 로고 / 오프닝 테마라는 컨셉으로 의도적으로 'Intro'를 포함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Blue Peter>에서도 앨범에 'Intro'를 의도적으로 넣어줌으로써, 전체적인 앨범의 색깔이나 테마를 먼저 요약함과 동시에 리스너들이 앨범의 사운드에 쉽게 빠져들 수 있도록 한다. 특히 드럼-베이스-기타-보컬 순으로 쌓아가면서 시작하는 <Blue Peter>의 'Intro'는 다음 트랙으로 부드럽게 이어짐과 동시에, 앨범에서 그려나가고자 하는 청량 하면서도 몽환적인 봄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2번 트랙 'エイプリルブルー (AprilBlue)'의 경우 밴드명과 동일한 셀프 타이틀인 만큼 AprilBlue의 색깔 그 자체인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곡은 푸른 4월 하늘을 연상시키는 캐치하고 청량한 기타 멜로디가 상당히 인상적인 곡으로, 보컬 Funasoko Haruki의 따뜻한 목소리가 잘 어우러지는 곡이다. 다만 어느정도 의도적인 믹싱이겠지만, 선공개했던 싱글 버전보다 앨범 버전에서는 사운드가 좀 더 지저분하게 메이킹이 되었다 보니, 청량한 사운드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차라리 싱글컷을 그대로 사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3번 트랙 'スターライト (Starlight)'는 2번 트랙과 함께 싱글로 먼저 공개되었던 곡 중 하나로, 앨범 내에서 가장 빠르게 질주하는 곡이자 얼터너티브한 특징이 잘 드러나는 곡 중 하나이다. 이 두 트랙, 'エイプリルブルー'와 'スターライト'는 모두 夏bot 특유의 청량하면서도 퍼지한 사운드를 명확히 찾아볼 수 있는 곡으로, 夏bot이 AprilBlue에서 만들어내고자 하는 슈게이즈의 J-Pop적인 해석을 느껴볼 수 있는 중요한 트랙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트랙 'ベイビーブルー (Baby Blue)'는 앞선 두곡의 템포를 낮추면서 다소 숨겨두었던 슈게이즈 요소를 좀 더 전면에 드러내보는 곡이다. 그리고 5번 트랙 '朝'는 아마 이 앨범에서 가장 지루한 트랙이라고 생각되는 무난한 인디팝 트랙인데, 청량하고 따뜻한 봄이라는 앨범 컨셉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앞선 트랙들과는 달리 갑자기 앨범 전체의 템포가 다소 처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앨범 진행 면에서 매번 강-강-강으로만 배치하는 것도 썩 좋은 편은 아니기에 앨범 구성면에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어지는 6번 트랙 'サンデー (Sunday)'은 지루한 5번을 지나서 밝고 경쾌한 멜로디로 순식간에 리스너를 환기시켜준다. 앞선 트랙이 다소 지루했기에 상대적인 효과일 수도 있지만, 빠른 템포로의 전환과 명랑하고 속도감 있는 기타 연주를 통해 봄의 밝고 청량한 에너지가 그려져서 굉장히 기분 좋아지는 곡 중 하나이다. 다음 트랙 運命の人은 가냘픈 듯 아련하게 곡을 이끌고 가는 Funasoko Haruki의 보컬과 빈틈을 채우는 이펙터 먹인 기타, 고조되는 드럼 등 군더더기 없는 매끄러운 곡 전개가 정말 매력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다. 8번 트랙 'イノセンス (Innocence)' 역시 싱글로 먼저 공개되었던 곡으로써, 앞서 언급한 2번 트랙 'スターライト (Starlight)'와 비슷하게 얼터너티브한 곡 전개를 따르고 있는 곡이다. 그리고 다음트랙 '花とか猫とか'의 경우 앨범에서 가장 흥미로운 트랙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트랙은 도입부의 찢어지는 기타 사운드와는 달리, 곧바로 베이스와 드럼만 살린 채 연주의 구성을 순식간에 전환하면서 J-Pop적인 감상을 살려낸다. 그와 동시에 하이라이트 부분에는 이펙트 먹인 기타를 포함한 슈게이즈의 문법을 다시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J-Pop에 대한 AprilBlue만의 고유한 해석을 느껴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앨범은 'ミルキーウェイの岸辺から'을 통해 다시 한번 캐치하고 경쾌한 멜로디를 선보이면서 새파란 앨범 커버와 같은 4월의 봄을 완성한다.

 

AprilBlue - 'スターライト (Starlight)'

 夏bot은 AprilBlue의 음악을 ‘New J-Pop’으로 부르고 싶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Blue Peter>에서 드러나는 夏bot 만의 캐치하면서도 청랑한 드림팝 사운드와 도쿄 인디씬에서 잔뼈가 굵은 경력직 멤버들의 노련한 연주,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새로운 J-Pop에 대한 AprilBlue만의 해석은, 리스너들에게 분명 신선한 감상을 제공할 것이다.

 

<Blue Peter>로 그려낸 마냥 푸르지도 새하얗지도 않은 4월의 색깔이야 말로, 슈게이즈와 J-Pop 그 사이에 걸쳐진 AprilBlue 그들 자신을 말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AprilBlue - <Blue Peter>


+ 여담이지만, 夏bot의 메인 밴드였던 For Tracy Hyde의 활동이 5집 <Hotel Insomnia>를 끝으로 2023년 1월에 마무리되었다. For Tracy Hyde의 음악을 오랫동안 좋아하고 즐겼던 입장으로 정말 아쉽긴하지만, 夏bot의 음악적 행보는 앞으로 AprilBlue를 통해서 이어져 나갈 것으로 보인다.


<Track List>
1. Intro
2. エイプリルブルー (April Blue) ★
3. スターライト (Starlight) ★
4. ベイビーブルー (Baby Blue)
5. 朝
6. サンデー (Sunday) ★
7. 運命の人
8. イノセンス (Innocence) ★
9. 花とか猫とか ★
10. ミルキーウェイの岸辺か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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