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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루키가 쏘아 올린 세대교체의 신호탄

: Inhaler - <It Won't Always Be Like This>

- Released : 2021. 07. 09.
- Genres : Post-Punk Revival, New Wave


 한번 만들어진 장르의 이미지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특히나 어떤 장르가 주류로 떠오르게 되면 선구자들이 만들어 놓은 이미지는, 대중선택의 결과이자 검증된 성공의 DNA이기에, 후발주자들에 의한 자연스러운 장르적 자기 복제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복제의 반복은 다시 그 장르가 가진 이미지를 강화하고 하나로 고정시킨다. 마치 Radiohead가 되고 싶었던 수많은 짝퉁들과 Car Seat Headrest가 되고 싶었던 여러 밴드캠프 아류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등장했던 여러 장르의 이미지들 중에서도, The Strokes가 <Is This It> 단 한 장으로 완성시켜 버린 포스트펑크 리바이벌의 세련되고 쿨한 이미지만큼 '스타성'과 '젊음'을 거침없이 드러내기에 적합한 것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21세기의 록스타 자리는 자연스럽게 '20대의 쿨함과 도시적인 세련미'를 앞세운 포스트펑크 리바이벌 밴드로 부터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마치 춘추전국시대와 같았던 2000년대 초중반의 포스트펑크 리바이벌 대전의 결과는, Arctic Monkeys가 침체기를 겪던 The Strokes를 끌어내리고 최후의 록스타 타이틀을 이어받음으로써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그 치열했던 음악적 경쟁에도 불구하고, 2020년도에 <The New Abnormal>을 뽑아내며 길었던 암흑기를 끝내고 화려하게 부활한 The Strokes를 제외하면, 현재의 주류 록 흐름 한 축을 이끌고 있어야 할 다른 포스트펑크 리바이벌 밴드들의 활약은 지지부진한 편이다. 방향성 전환의 역풍을 맞은 Arctic Monkeys를 필두로, 오락가락하는 The Killers, 언제부터인가 신보를 내도 전혀 기대되지 않는 The Vaccines와 The National까지. 10년대 후반부터 최근 몇 년간 지속된 주요 포스트펑크 리바이벌 밴드들의 실망스러운 앨범 퀄리티는, 록의 부활은커녕 전체 록씬의 후퇴를 가속시킬 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리스너들은 어느새 불혹을 넘겨버린 Julian Casablancas와 30대 후반에 접어든 Alex Turner를 마주하게 되면서 포스트펑크 리바이벌의 핵심이나 다름없었던 '젊고 자신감 넘치는 이미지'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이 더 이상 장르에 안 어울린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리스너들에게는 분명 '쿨하고 에너지 넘치고 세련된 20대의 음악'이라는 포스트펑크 리바이벌의 지배적인 이미지에 맞는 새 아티스트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2021년 데뷔앨범 <It Won't Always Be Like This>을 발매하며 등장한 Inhaler는 The Strokes가 제시했던 포스트펑크 리바이벌에 대한 이미지를 훌륭하게 벤치마킹함과 동시에 범상치 않은 혈통까지 등에 업고, Inhaler라는 그 이름처럼 죽어가던 장르에 산소호흡기를 붙이며 마치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슈퍼루키의 등장이자 20년대의 록스타 자리를 향한 세대교체를 알리는 그들의 출사표였다.

 

Inhaler - 'It Won't Always Be Like This'

 

 Inhaler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결성된 밴드로, 멤버들의 나이가 고작 99년생, 00년생인 20대 초반의 젊은 밴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2021년 7월에 발매한 데뷔앨범 <It Won't Always Be Like This>는 발매와 동시에 바로 아일랜드, 영국 차트 1위를 쓸어 담는 저력을 보여주며 슈퍼루키의 탄생을 알렸다. 특히 아일랜드 아티스트가 데뷔 앨범으로 영국 차트를 쓸어 담은 건 2008년 The Script 이후 13년 만이라고 하니, 이들이 가장 범상치 않은 신인 중 하나임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 프론트맨인 Elijah Hewson이 가진 ‘보노의 아들’이라는 비범한 타이틀은, Inhaler를 세대교체 경쟁에서 한걸음 더 앞서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가진 록스타의 혈통은 그저 스타성과 팬들의 관심을 더해주는 요소일 뿐, 정작 당사자인 Elijah Hewson에게는 관심 밖의 사안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Inhaler에서 드러내는 아버지의 유산은 피 속에 흐르는 음악적 재능과 아버지를 닮은 웅장한 성대뿐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리스너뿐만 아니라 포스트펑크 리바이벌이라는 장르에 있어서 Elijah Hewson이 가진 목소리의 힘은 무시할 수는 요소이긴 하다. 한번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Alex Turner가 아니라 Rivers Cuomo가 'Do I Wanna Know?'를 불렀다면 과연 대중들의 열광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만큼 포스트펑크 리바이벌에 있어 도시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멋진 보컬의 존재는 쉽게 바뀔 수 없는 이미지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매력적인 음색이야 말로, 다른 밴드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Inhaler가 가진 최고의 차별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Inhaler - 'Cheer Up Baby'

 

 <It Won't Always Be Like This>는 직관적이고 캐치한 기타에 생동감 넘치는 젊음의 에너지가 더해진 11개의 트랙들로 이루어진 앨범이다. 우선 첫 트랙인 동명의 타이틀곡 'It Won’t Always Be Like This'는 2년 전 미리 싱글로 공개했던 곡을 다시 재작업하여 수록한 곡이다. 구버전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짧은 기간이지만, Inhaler의 음악적 성장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80년대 뉴웨이브의 요소가 가득한 자신감 넘치는 신스 전주와 뒤에 이어지는 파워풀한 보컬과 선명한 기타 리프의 조화는, 리스너들이 기대했던 ‘젊고 세련된 20대의 음악’이라는 이미지를 정확히 관통한다. 이어지는 두 번째 트랙 'My Honest Face' 역시 오프닝의 속도감을 그대로 이어받아 폭발적인 하이라이트를 통해 리스너를 사로잡는다. "I’ll take you to an honest place"라는 후렴구의 가사는, 연인에 빗대어 표현했지만, 앨범에서 Inhaler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담긴 가사라고 할 수 있다.

 

 3번째 트랙 'Slide Out The Window'는 감미로운 신스와 이펙트 먹인 기타를 중심으로 강-강으로 진행된 두 오프닝의 과열된 템포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다소 누그러진 오프닝의 에너지는 다음 곡인 'Cheer Up Baby'를 통해 다시 한 번 탄력을 받는다. 이 곡은 기타 전주 뒤로 드럼, 보컬, 신스가 하나하나씩 더해지며 만들어지는 세련된 멜로디의 파도가 인상적인 곡이다. 특히 후반부 하이라이트에서 선 굵은 기타 리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곡 전개는, 이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다음에 이어지는 'A Night On The Floor'와 'My King Will Be Kind'는 앨범에서 그나마 약한 트랙들로 뽑을 수 있을 것이다. 'A Night On The Floor'의 경우에는 앞선 곡들과는 달리 Arctic Monkeys의 <AM>과 같이 다크 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전달하는 곡이다. 전체적으로 무게감 있는 전개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이 곡에서 Arctic Monkeys와 같은 섹시함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Inhaler의 노련미가 부족해 보여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곡이다. 'My King Will Be Kind'는 조금만 더 다듬었으면 인상적인 곡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서정적인 빌드업을 너무 과하게 가져간 느낌이 있다. 두 트랙 모두 아쉬운 점들이 있긴 하지만, 비교적 차분한 템포로 진행하면서 앨범 전체의 호흡을 조절하기에는 최적의 배치였다고 보인다.

 

 7번 트랙 'When It Breaks'는 펑크의 문법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곡 중 하나로, 앨범 후반부의 떨어지는 에너지를 다시 높이기 위해 전략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When It Breaks'의 공격적인 템포와 직관적인 기타는 앨범 오프닝의 에너지를 다시한번 상기시킴으로써 앞 두곡으로 늘어진 리스너의 신경을 다시 앨범에 집중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다음 트랙 'Who's Your Money On?'는 앞선 트랙들과 달리 적극적인 베이스의 활용이 상당히 인상적인 곡이다. 곡의 빈틈을 파고드는 베이스와 캐치하고 세련된 신스 멜로디의 조합은, 'When It Breaks'로 상기된 20대의 에너지에 도시적인 세련미를 덧붙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를 통해 앞서 언급했던 포스트펑크 리바이벌의 '멋지고 세련된 20대의 음악'이라는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구체화되어 중독적인 하이라이트와 함께, Inhaler라는 이름을 리스너들의 뇌리에 새기게 된다. 그러고 나서 이어지는 'Totally'는 'Who’s Your Money On?' 후반부를 이어받아 부드럽고 여유로운 템포로 다시 안정시키고, 기존과는 살짝 결이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며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더해준다. 그렇게 앨범은 짧은 'Strange Time To Be Alive'을 지나 마무리인 'In My Sleep'에서 다시 한번 선명한 기타를 중심으로 하는 고전적인 The Strokes 스타일의 곡을 선보인다. 이런 전략적인 마무리를 통해 Inhaler는 리스너들이 기대했던 '도시적인 젊음과 세련된 20대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자신들이 그 계보를 이어간다는 포부를 드러낸다.

 

Inhaler - 'Who's Your Money On? (Plastic House)'

 

 이렇듯 Inhaler는 <It Won't Always Be Like This>에서 그들의 넘치는 재능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인상적인 데뷔앨범을 완성하였다. 깔끔한 앨범 완성도와 에너지 넘치는 음악은 리스너들이 갈망하던 이미지를 정확히 관통했고, 그들의 비범한 혈통은 남들과는 차원이 다른 출발선과 스타성을 부여해 주었다. 그렇다면 정말 Inhaler는 앞으로 그 이름처럼 죽어가는 록씬을 구원할 산소 호흡기가 될 수 있을까.

 

당돌한 슈퍼루키가 쏘아올린 세대교체의 첫 신호탄을 한번 귀 기울여 보길 바란다.

 

Inhaler - <It Won't Always Be Like This>


<Track List>
1. It Won't Always Be Like This ★
2. My Honest Face ★
3. Slide Out The Window
4. Cheer Up Baby ★
5. A Night On The Floor
6. My King Will Be Kind
7. When It Breaks
8. Who's Your Money On? (Plastic House) ★
9. Totally
10. Strange Time To Be Alive
11. In My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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