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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관계와 구원의 느와르
: The Afghan Whigs - <Black Love>
- Released : 1996.03.12.
- Genres : Alternative Rock, Grunge, Soul
어둡고 우중충한 배경 아래서 술, 마약, 범죄 등 가장 밑바닥의 인간 욕망을 그려내는 느와르는, 영화나 소설 뿐만 아니라 음악에서도 매력적인 소재 중 하나이다. 이런 느와르의 색깔을 표현한 앨범은 여럿 있겠지만, 그 중 최고는 분명 The Afghan Whigs의 1996년작, <Black Love>일 것이다. The Afghan Whigs는 전작 <Gentlemen>의 후속작과도 같은 이 앨범에서, 패배주의를 노래하던 그런지와 끈적한 소울이 가진 장르적 특성을 앨범에 섬세하게 녹여냈다. 이런 The Afghan Whigs 특유의 소울 / R&B를 차용한 밴드 사운드는 백인 밴드의 흑인 음악 차용에 대한 또 하나의 방향성 제시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Black Love>의 백미는, 마치 범죄소설을 그대로 음악으로 옮겨놓은 듯한 가사와 앨범 컨셉일 것이다. 앨범의 이런 영화적인 구성은 프론트맨인 Greg Dulli가 좋아하던 영화와 문학에서 비롯되었고 할 수 있다. 그가 즐겨보았던 《Blood Simple》,《Seven》 등 당시 유행하던 느와르 영화들과 각종 범죄 소설들은 그의 고질적인 우울증과 결합하면서, 관계의 갈등과 보복에 대한 탐구로 구체화되어 나갔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Greg Dulli의 1차적 욕망에 대한 남성적이고 어두운 집착은 <Black Love>를 통해 완성되면서, 그 치열했던 90년대의 미국 그런지씬 속에서도 충분한 주목을 이끌어내었다.
<Black Love>는 위태로운 관계에 대한 분노와 욕망을 공격적인 기타와 소울의 끈적한 특성을 결합함으로써 그려내고 있다. 강박적일 정도로 느와르의 틀을 앨범 속에 담아낸 이 앨범은, 관계에 대한 불신, 거짓과 진실 사이의 모호함, 범죄와 복수로 점철된 뒤틀린 주인공과 그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우선 이런 뒤틀린 주인공에 대한 묘사는 앨범의 첫곡 'Crime Scene Part One'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A lie / The truth
Which one shall I use?
-Crime Scene Part One 가사 中-
'Crime Scene Part One'에서 주인공은 처절한 복수에 대한 의지와 극단으로 치달은 상황에 대한 절망과 분노, 후회에 대한 감정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극단적인 감정묘사를 가진 'Crime Scene Part One'의 작업 배경에는 조금 특별한 모티브가 있다. 우선 그 모티브 중 하나는 Greg Dulli가 알고 지내던 친구의 자살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The Million Dollar Hotel》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우연히 먼저 읽어보게 되면서 알게 된 -한 남자가 호텔 지붕 위에서 뛰어내리는- 영화의 첫 장면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The Afghan Whigs는 이런 영화의 장면과 충격에서 영향을 받아, <Black Love> 첫 트랙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Crime Scene Part One'은 위 가사처럼 복수에 대한 단 하나의 감정만을 그리지 않고 복합적인 여러 감정선을 묘사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1분가량의 긴 오르간 전주 뒤에 이어지는 차갑고 씁쓸한 기타와 점점 고조되다가 한번 응축된 후 폭발하는 하이라이트는, <Black Love>의 비장하면서도 어두운 느와르적 분위기를 한층 설득력 있게 설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어지는 다음 트랙은 'My Enemy'로, 강렬한 기타 연주와 빠른 템포의 드럼을 통해 본격적으로 가장 가까운 친구의 배신과 처절한 복수의 속삭임으로 끝없이 뒤틀리는 관계를 고조시켜 나간다.
Out of your mind bent on revenge / To think I once called you my friend
-My Enemy 가사 中-
다음으로 나오는 'Double Day'는 이전 트랙 'My Enemy'에서 마치 주인공이 배신감에 흥분함에 따라 빨라졌던 곡의 템포를 차갑게 내리며 주인공의 편집증(Paranoia)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트랙에서는 곡의 차분하고 조용한 진행과 감정적이고 날카로운 보컬의 전환을 계속 번갈아가며 보여줌으로써 주인공의 정신병적인 모습을 묘사한다. 하지만 이런 묘사도 잠시일 뿐, 이어지는 4번 트랙 'Blame, Etc.'에서 The Afghan Whigs는 그루브한 흑인 소울의 맛을 가진 공격적인 펑크 사운드와 함께, '비난 / 거부 / 배신 / 분열 / 거짓 / 진실'을 울부짖으며 앞선 'Crime Scene Part One'에서 보여줬던 복수심과 함께 뒤틀려버린 관계 속에서 아무도 믿지 못하는 처절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Blame / Deny / Betray / Divide / A lie / The truth
Which one shall I use?
-Blame, Etc. 가사 中-
인간성의 진흙탕 가장 밑바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5번 트랙 'Step Into The Light'을 보면 주인공은 한편으로는 구원을 바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곡을 통해 잠깐이지만 지금까지 주인공을 밀어붙인 악랄한 관계성과 편집증, 날카로운 복수심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간절한 구원에 대한 진심만이 남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주인공의 진심은 곧바로 시작되는 'Going To Town'의 기계적인 드럼 비트와 함께 순식간에 마무리되며 이후 <Black Love> 전개의 전환점을 예고한다. 이후 앨범은 7번 'Honky's Ladder'와 8번 'Night By Candlelight'을 지나며 주인공의 자기 성찰을 통해, 앨범의 시작점에서부터 던진 최초의 질문 -"A Lie or The Truth, Which one shall I use?"-으로 되돌아간다.
<Black Love>의 피날레를 완성하는 3개의 곡 중 첫 번째인 9번 트랙 'Bulletproof'는 자기 성찰을 끝낸 주인공의 구원을 향한 고백이자 기도이다. 이 트랙에서 주인공은 "진실을 말하는 것"은 "거짓말쟁이"에게 달린 일이라고 말하며 뒤틀린 관계에서 겪어온 고통을 자신의 내면 속으로 돌린다. 이런 가사를 따라 곡의 구성 역시 후반부에서 "Love"를 울부짖는 보컬과 약 2분간의 휘몰아치는 피아노와 밴드 사운드를 통해 주인공의 구원을 향한 화려한 피날레의 시작을 연주한다. 다음 곡인 'Summer's Kiss'는 Greg Dulli가 The Who 스타일의 곡을 그들의 음악에 한번 접목시켜 본 트랙으로, 특유의 퍼지하면서도 멜로딕한 기타와 "Demons, be gone!"이라는 가사를 통해 주인공에게 구원의 빛을 선물하게 된다.
Can I believe in you?
Lord, lift me out of the night
-Faded 가사 中-
<Black Love>의 마지막 트랙 'Faded'는 이러한 구원의 서사를 마무리하는 곡이자 역사상 최고의 피날레 중 하나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곡은 앨범의 오프닝인 'Crime Scene Part One'과 비슷한 오르간 인트로로 시작한다. 하지만, 'Faded'는 인트로보다 더 많은 오르간 조합을 사용하고 백그라운드에는 미세하지만 합창단까지 동원하면서 인트로의 불안한 정서와는 다른 주인공의 입장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런 장엄한 오르간 인트로 이후, 'Faded'의 멜로디 라인은 "Straight in"이라는 멘트와 함께 한 번에 부서지며 한순간에 기타와 베이스, 드럼으로 대체된다. 약 8분 동안 이어지는 긴 곡임에도 불구하고 The Afghan Whigs는 기타가 줄어드는 틈을 타, 위의 가사처럼 뒤틀린 관계와 배신 속에서 분노하던 주인공의 마지막 신뢰를 가사에 담아 전달한다. 그렇게 최후의 신뢰를 전달한 이후 트랙은 곧바로 절정부로 돌입하면서, 모든 악기와 화음을 하나로 합친 웅장한 사운드를 통해 주인공의 완전한 구원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곡은 마지막으로 부드러운 피아노와 함께 "Fade in" 되며 <Black Love>의 끝을 알린다.
이렇듯 The Afghan Whigs는 <Black Love>에서 배신과 분노를 다룬 앨범 초반부의 느와르적 색채와는 달리, 후반부에서는 낙관주의적인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넣으면서 흥미로운 컨셉 앨범을 완성했다. 게다가 앨범에서 사용된 흑인 소울에 기초한 밴드 사운드는 당시의 미국 록 씬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기에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런 뛰어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Black Love>는 당시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 The Afghan Whigs의 재결합과 함께 이 앨범도 재조명 되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Black Love>가 그려낸 느와르 속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The Afghan Whigs - <Black Love>
<Track List>
1. Crime Scene Part One ★
2. My Enemy ★
3. Double Day
4. Blame, Etc. ★
5. Step Into The Light
6. Going To Town
7. Honky's Ladder
8. Night By Candlelight
9. Bulletproof ★
10. Summer’s Kiss
11. Fad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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