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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슈게이즈를 찾아서: 태동기부터 오늘날까지
진짜들만 찾아 듣던 시절을 지나 어느새 마이너들의 왕이 되어버린 일본 슈게이즈. 두터운 소음과 이펙터를 앞세워 사운드를 철저하게 뭉개는 정공법과 달리, 보다 선명한 멜로디 라인과 슈게이즈 티만 내는듯한 옅은 잔향은 일본 슈게이즈만의 독특한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특이성이 너무 돋보이는 나머지, 다른 매력 요소들이 쉽게 간과되곤 한다. 게다가 바로 옆 동네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접할 수 있는 정보들도 적다 보니 어디서부터 들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일본 슈게이즈가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자리 잡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파헤쳐보자.
1. ライド歌謡, 기타의 본질을 향하여
Blue Hearts의 펑크 록과 Loudness의 메탈이 수놓은 80년대를 지나, 90년대의 일본 역시 영미권을 따라 얼터너티브 록이 점차 싹트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당시 영국 인디씬의 최신 트렌드였던 슈게이즈도 일본 레코드점들의 레이더망에 자연스레 포착되게 된다. 그리고 머지않은 1990년, 이를 취급하던 시부야의 레코드점 'ZEST'에서 Ride의 두 번째 EP 《Play》가 흘러나오면서, 일본 슈게이즈의 밑바탕도 하나둘 그려지기 시작한다.
알다시피 Ride는 함께 묶이는 My Bloody Valentine, Slowdive와 비교해 가장 이질적인 스타일을 가진다. 특히 소음 속에서도 청량하고 직관적인 기타를 유지하는 이들의 음악은 사운드의 모호성에 목표를 둔 일반적인 슈게이즈 작법으로 이끌어내기 힘든, 대중적인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당시 레코드점을 방문한 Spitz의 Kusano Masamune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듬해 발표된 2집 《名前をつけてやる》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를 뒷받침하듯, Spitz는 자신들의 새로운 방향성을 ライド歌謡(Ride-가요)라는 적나라한 이름으로 소개했고, 이는 Ride의 영향력이 일본 주류 음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완전한 슈게이즈도, 쟁글팝도 아니었던 ライド歌謡의 불완전한 지향점은 당시의 Spitz를 성공도 실패도 아닌 애매한 위치로 보내버린다. 더욱이 Spitz는 정통 슈게이즈 밴드도 아니었기에 이들에게 일본 슈게이즈의 미래를 기대하는 것도 어폐가 있었다. 결국 장르의 발전을 위해서는 ライド歌謡가 어렴풋이 제시한 '기타 중심의 멜로딕한 해석'을 구현할 '진짜' 슈게이즈 밴드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러한 갈증은 메이저 레이블 Victor Record와 연결되어 있던 Paint in Watercolour가 등장하면서 점차 해소되기 시작한다. 실제로 이들은 1992년과 1993년 연달아 발매된 《Unknown》과 《Velocity》를 통해, 찰랑거리는 기타에 댄서블한 매드체스터(Madchaster) 리듬을 가미하며 Ride-스타일을 훌륭하게 재해석해낸다. 나아가 Venus Peter의 《Space Driver》와 Spiral Life의 1994년작 《Flourish》 역시 이 흐름에 힘을 보태면서, 기타 멜로디를 중심으로 한 Ride-지향성을 조금씩 일본 슈게이즈에 심어나갔다.
2. 소음 속에서 뻗어나간 두 번째 뿌리
한편 1991년 11월에 진행된 My Bloody Valentine의 일본 투어는 가와사키, 오사카, 나고야 등지에서 수많은 마니아들을 불러 모으며 《Loveless》가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특히 멜로딕함에 초점을 맞춘 메인스트림의 Ride 추종과는 달리, 노이즈와 실험성에 집중한 My Bloody Valentine의 미학은 언더그라운드에 보다 쉽게 녹아들었다. 그리고 이는 무게감 있는 하드코어/메탈 계열과 자연스레 맞물리며, ライド歌謡와는 완전히 상반된 또 하나의 기류를 만들어낸다. 이후 이 노선은 1991년 결성된 Coaltar of the Deepers와 궤를 같이하며 성장해 나갔고, 《The Visitors From Deepspace》-《Submerge》-《Come Over to the Deepend》-《No Thank You》로 이어지는 명반 릴레이를 통해 장르에 지대한 족적을 남긴다. 또한 완전한 슈게이즈로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1992년부터 시작된 Boris의 어두컴컴한 활약 역시 인디씬의 노이즈 활용법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과도기의 발전을 견인한다.
앞선 두 밴드 외에도 요코하마의 Luminous Orange 또한 초창기 흐름에서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이들은 본래 Lush, Pale Saints와 같은 보다 원초적인 슈게이즈에서 영감을 받았으나, 점차 부유하는 여성 보컬을 강조한 My Bloody Valentine 레퍼런스로 귀결되면서 《luminousorangesuperplastic》, 《Drop You Vivid Colours》를 통해 꽃을 피우게 된다. 그리고 1995년 오사카에서 결성된 Honeydip 역시 《Portable Audio Science》, 《Planet of the Honey》, 《Another Sunny Day》 등에서 노이지하고 밀도감 높은 사운드를 중점적으로 선보이며 나름의 족적을 남긴다. 이처럼 90년대 중후반 인디씬에서 전개된 노이즈 활용법에 대한 고민들은, 후술할 세기말 전환점과 함께 일본 슈게이즈의 훌륭한 자양분이 되어 2000년대의 가파른 성장세를 뒷받침하게 된다.
3. 답습된 성공과 새천년의 방정식
1998년, 아오모리현을 박차고 나온 Supercar의 질주와 함께 미묘한 줄타기를 선보이던 두 노선은 Ride-계열 쪽으로 점차 기울기 시작한다. 캐치한 기타 선율과 산뜻한 피드백을 앞세운 Supercar의 데뷔앨범 《Three Out Change!!》가 그동안 모호한 감상에 의지하던 ライド歌謡를 명확히 구현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이 받아 든 '오리콘 차트 20위'라는 기록은 멜로디를 앞세운 메인스트림 전략의 결정적인 승리를 의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성과와는 별개로 냉정하게 《Three Out Change!!》 자체는 -'U', 'Planet'과 같은 곡에서도 드러나듯이- Oasis, Teenage Fanclub 등 당대 영국 음악씬을 따라한 반쪽짜리 카피캣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그 성공의 표본이었던 브릿팝 버블마저도 《Be Here Now》와 함께 이미 붕괴하고 있었기에, 일본 슈게이즈는 이 반짝 인기를 맛볼 새도 없이, 자생을 위한 독자적인 해석을 만들어내야 했다.
이에 따라 90년대 말 일본 슈게이즈에서는 엠비언트(Ambient)를 활용한 Color Filter의 《Sleep in a Synchrotron》, 하드코어에서 파생된 BP의 《Golden BP》, 포스트록을 접목한 Jesus Fever의 《Dozens of Great Views》와 같은 여러 실험적인 대안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단발적인 시도에 그쳤을 뿐, 유의미한 게임체인저가 되지는 못했다. 결국 이 혼돈의 세기말에서 장르를 다시한번 구원한 것은 Supercar였다. 새천년의 시작과 함께, Supercar는 메인스트림 위에서 《Futurama》-《Highvision》으로 이어지는 과감한 일렉트로닉 드리프트를 선보인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Supercar의 충격요법은 오리콘 차트 11위, 롤링스톤 재팬 선정 '일본 100대 록 앨범' 86위라는 대기록으로 이어졌고,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은 일본 슈게이즈의 절대적인 이정표로써 자리 잡게 된다.
2000년대 초, 메인스트림에서 펼쳐진 Supercar의 눈부신 활약은 이에 영감을 받은 수많은 슈게이즈 밴드들의 각축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Walrus는 《光のカケラ》를 통해 한없이 침전하는 밀도 높은 사운드를 먼저 선보였다. 비슷한 시기, 이후 장르의 중흥을 이끌 핵심 역할을 맡게 될 Cruyff in the Bedroom 역시 왜곡 중심의 《Perfect Silence》와 《Hikarihimawari》를 발표하며 인지도를 서서히 높여갔다. 반면 2002년 고베에서 결성된 Mass of the Fermenting Dregs는 이들과는 달리 강렬한 포스트-하드코어에 기반한 접근법을 제시했다. 이들의 방법론은 멜로딕함과 직관성을 강조한 Ride-계열과 빠르게 맞물렸고, 《Mass of the Fermenting Dregs》, 《World Is Yours》 등으로 이어져나간다.
한편 Lovesliescrushing, Astrobite의 Scott Cortez가 믹싱으로 참여한 Hartfield의 2003년도 앨범, 《True Color, True Lie》는 몽환적인 향수를 장르에 소개한다. 이후 이러한 기류는 Pasteboard의 2005년작 《Glitter》로 이어지며 반복적이고 어스름한 색채로 확장된다. 이들 외에도 홋카이도에서 결성된 The Sleepwalk는 《Phantasmagoria》, 《Phantasmagoria III》, 《The Forest of Foss Darya》 등을 통해 글리치한 IDM 기반의 방법론을 제시하며 일본의 Sweet Trip에 비유할만한 독창적인 노선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Supercar로부터 촉발된 거침없는 도전의 방정식은, 당대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후세대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일본 슈게이즈 특유의 자유분방한 개성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된다.
4. 《Total Feedback》에 더해진 양의 피드백
2008년, Cruyff in the Bedroom의 Hata Yusuke를 필두로 도쿄의 Koenji High 공연장에서 'Total Feedback'이라는 -아직까지 유지 중인- 정기적인 슈게이즈 라이브가 시작된다. 특히 관련 컴필레이션 《Total Feedback》에는 어느덧 1세대로 자리 잡은 Luminous Orange를 비롯해 아직 싹을 틔우기 전의 Plastic Girl in Closet, My Dead Girlfriend와 같은 걸출한 아티스트들이 모여들며 다양한 스타일을 담아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일본 내 수많은 슈게이즈 밴드들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계기가 되며, 영미권과 완전히 분화된 독자적인 폐쇄루프를 형성하는 출발점이 된다. 하지만 이 닫힌 생태계는 생각보다 오래 유지되지는 않았는데, 2010년 초, 현재는 흔적만 남은 'Asian Shoegaze'라는 유튜브 채널이 일본 슈게이즈의 대대적인 확산을 불러오며 장벽을 무너트렸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의 파도는 일본 인디를 찾아 헤매던 이들을 해당 유튜브 채널로 하나둘 이끌었다. 그리고 마치 예고된 필연인 듯이, 'Asian Shoegaze'의 기막힌 선곡력은 전세계 방랑자들의 시선을 금세 사로잡았다. 실제로 채널에는 종합선물세트인 《Total Feedback》를 비롯하여 Oeil의 《Urban Twilight》과 같은 2000년대의 숨겨진 걸작, 파괴적인 노이즈를 앞세운 Cosmicdust의 《Snow Noise Assemblage》, 그리고 당시의 최신 앨범들이었던 Broken Little Sister의 《Memories, Violet & Demons》, Shojoskip의 《Cosodorokitsune》, Burrrn의 《Blaze Down His Way Like the Space Show》까지. 찾기도 힘든 다양한 일본 슈게이즈 보석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나아가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어느 쪽이 우선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해당 선곡 목록들은 Last.fm이나 스포티파이 등의 추천 목록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면서 서로 돌고 도는 양의 피드백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러한 일본 슈게이즈의 확산 한편에는 보컬로이드의 활약도 있었다. 2012년 'The Voc@loid M@ster 20'에서는 Wintermute, Moff-P, 36g 등이 작업한 동인 컴필레이션 《Mikgazer》가 공개된다. 이 앨범은 의외의 완성도도 한몫했지만, 역시 모종의 알고리즘을 타고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고, 마침 힙스터질의 정점을 달리던 '/mu/'의 레이더망에 포착되면서 본격적으로 퍼져나간다. 이러한 흐름을 따라 보컬로이드와 슈게이즈를 결합한 'Vocagaze'가 탄생했고, 2016년 사실상의 후속작인 《Postgazer》로 이어지며 일본 슈게이즈의 이단성을 한층 확장시킨다.
5. 황금세대의 'New J-Pop'
인터넷 상의 마니아들을 거치며 점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일본 슈게이즈는 Kinoko Teikoku, For Tracy Hyde 등으로 대표되는 2010년대의 황금세대와 함께 전성기를 맞이한다. 먼저 2009년 Honeydip을 해체한 Jun Shibuya는 Plastic Tree에서 드러머로 활동했던 Hiroshi Sasabuchi와 함께 Tokyo Shoegazer라는 밴드로 슈게이즈씬에 다시 복귀한다. 그리고 2011년, 이들이 발매한 데뷔앨범 《Crystalize》는 헤비하고 불친절한 소음들을 발산하며 장르의 황금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재밌게도 《Crystalize》는 업로드된 썸네일이자 앨범커버인 '고양이' 사진으로 먼저 관심을 끌었는데, 이와 상반되는 거친 사운드가 묘한 반전매력을 불러오며 인터넷을 타고 온 리스너들을 매료시켰다. 특히 Tokyo Shoegazer는 컴필레이션 《Yellow Loveless》을 통해 My Bloody Valentine에 대한 헌사를 보낼 만큼, 정통적인 슈게이즈 스타일을 주로 구사했다. 즉, 이들의 음악은 Supercar 이후로 장르의 주요 골자가 된 '캐치한 작법'과 비교하여 해외의 리스너들이 접하기에 보다 익숙한 형태였다. 결과적으로 《Crystalize》의 정석적인 노이즈는 뜻하지 않게 일본 슈게이즈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계기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수많은 해외의 리스너들의 첫시작을 책임지게 된다.
하지만 《Crystalize》의 성공과는 별개로 Tokyo Shoegazer는 2집 《Turnaround》의 발매 이후,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약 6년간의 휴지기에 들어간다. 이 기간 동안 밴드는 CQ로 한번 파생되었는데, 《Communication, Cultural, Curiosity Quotient》라는 앨범에서 더 시끄럽고 더 열정적인 사운드를 담아내며 건재한 실력을 보여준다. 한편 같은 시기 도쿄 인디씬 한쪽에서는 평범한 인디록에서 슈게이즈로 전환을 시도한 밴드가 나타난다. 바로, 일본 슈게이즈의 명실상부한 아이콘 Kinoko Teikoku 등장이었다.
Kinoko Teikoku는 2012년작 《渦になる》에서 아직 J-인디록의 흔적이 남아있는 과도기적 슈게이즈 사운드를 시도한다. 하지만 곧바로 다음해, 음울함과 멜로딕함을 조화시킨 인디 걸작 《Eureka》를 통해 그 재능을 꽃피우며 일본 슈게이즈의 유명세를 완전히 폭발시킨다. 그동안 누적된 장르적 관심도와 음악성이 뒷받침된 Kinoko Teikoku의 인기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 앨범 《Fake World Wonderland》는 이들을 기어코 오리콘 차트에 올려놓았고, 이를 바탕으로 2015년 밴드는 메이저로 도약한다. 이후로도 밴드는 《猫とアレルギー》, 《Time Lapse》 등을 통해 꾸준한 성적과 인기를 이어가며 2010년대의 일본 슈게이즈를 완전히 지배해 나간다. Kinoko Teikoku가 장르의 선두에서 일본 슈게이즈를 이끄는 동안, 후미에서는 Plastic Girl in Closet, 17 Years Old and Berlin Wall, My Dead Girlfriend 등의 지원사격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들의 음악은 황금기의 촉매제였던 Asian Shoegaze 채널을 통해 전 세계의 마니아들에게 재전파되며 장르의 인지도를 국경 너머로 확산시켰다. 그 결과 Yuragi의 2016년도 EP 《Nightlife》는 알고리즘의 수혜를 받으며 수많은 온라인 추종자들을 확보했고, 이는 다시 일본 슈게이즈씬으로 파급되며 피드백 효과의 건재함을 입증했다.
2017년에는 For Tracy Hyde가 발표한 2번째 앨범 《he(r)art》를 통해 -아마 가장 익숙하게 느낄- 멜로딕하고 팝적인 접근법이 완전히 정립된다. 모호하게 왜곡된 시티팝 사운드를 활용한 《he(r)art》는 리스너들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일본적인' 이미지를 정확히 구현했고, Supercar의 영향을 받은 옅은 노이즈와 캐치한 기타의 조합은 독특한 중독성을 앞세워 수많은 관심을 이끌어냈다. 이를 뒷받침하듯 For Tracy Hyde의 작사/작곡을 담당하는 夏bot은 그들의 음악을 'New J-Pop'이라는 이름으로 대변했으며, 그 J-팝적 지향점은 2016년과 2019년 나름의 관심을 모은 슈게이즈-아이돌 프로젝트 DotsTokyo, RAY로 확장된다. 또한 For Tracy Hyde의 전성기와는 관계없지만, 잠깐 밴드의 보컬로 활동했던 Lovely Summer Chan 역시 《#ラブリーミュージック》, 《LSC》 등에서 Supercar를 계승한 가볍고 청량한 사운드를 보여주며 장르의 개성을 더해낸다.
6. 황금기의 일몰과 떠오르는 유망주들
2019년 Kinoko Teikoku의 해체와 함께 일본 슈게이즈의 황금기도 저물기 시작한다. 다행히도 이들의 빈자리는 《若者たちへ》의 Hitsujibungaku가 적절히 이어받았고, 2020년의 《Powers》, 2022년의 《Our Hope》로 발전해 나가며 메인스트림 내에서 장르의 파이를 어느 정도 유지해 낸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New Young City》, 《Ethernity》 등으로 꾸준히 팝적인 접근법을 시도하던 For Tracy Hyde의 활동 역시 마무리된다. 이후 밴드의 핵심이었던 夏bot은 AprilBlue로, 보컬 Eureka는 Ferri-Chrome으로 옮겨가 각자의 사운드를 선보였으나 예전만큼의 반향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는 사이 도쿄의 iVy, Kurayamisaka, 교토의 MoritaSaki in the Pool 등이 조금씩 성장했고 장르는 자연스럽게 전환기로 접어든다.
나아가 2022년, 아마 저작권 때문인 듯하지만, 온라인 리스너들의 핵심 교차로였던 Asian Shoegaze 채널에서 모든 앨범들이 내려간다. 결국 채널은 이후로도 복구되지 않았고 이를 기점으로 장르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핵심 엔진들은 일선에서 퇴장하게 된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연결된 그 순환구조가 급격히 단절되지는 않았는데, 이미 일본 슈게이즈 자체가 2010년대의 전성기를 지나며 탄탄한 인지도를 쌓았을 뿐만 아니라, Rate Your Music, 인스타그램과 같은 또 다른 전파경로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Kinoue64, Blurred City Lights 등은 각각 보컬로이드, 애니메이션틱한 앨범아트로 '일본스러운 환상'을 전면 배치하며 보다 전통적인(?) 일본 마니아층의 유입을 만들어낸다.

꾸준히 발전해나가는 장르 특유의 멜로딕한 기타 사운드 역시 다음 세대의 아티스트들로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구마모토에서 결성된 My Lucky Day는 2021년작 《All Shimmer in a Day》에서 부드럽고 여성적인 멜로디를 담아냈고, 도쿄의 Beachside Talks 역시 캐치하고 달콤쌉싸름한 기타를 앞세운 《Hokorobi》라는 앨범을 선보이며 계보를 잇고있다. 아마도 해당 계열에서 가장 익숙한 최신 밴드는 The Otals일 텐데, 이들 역시 2021년부터 청량하고 말랑말랑한 멜로디를 앞세운 앨범들을 꾸준히 뽑아내며 인지도를 점차 높여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일본 슈게이즈는 그 태동부터 지금까지 매번 극적인 변화에 부딪혀왔다. 90년대 영국 인디씬을 향한 저마다의 추종은 세기말의 고뇌를 거치며 독자적인 생태계를 만들기 시작했고, 인터넷에서 촉발된 뜻밖의 연결성은 장르의 잠재력을 만개시키며 오늘날의 인기를 만들어냈다. 이 글이 Kinoko Teikoku, Supercar의 지겨운 도돌이표를 대신해 가끔은 Paint in Watercolour, Hartfield 등이 언급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본 글에서 언급한 앨범들의 탑스터와 함께 글도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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